
우리는 종종 이런 순간을 겪습니다.
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어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멈칫하게 되는 순간.
감정은 분명히 느껴지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한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죠.
‘이게 슬픔인지, 분노인지… 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 같아.’
그런데 정말로, 감정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걸까요?
말이 없으면, 감정도 없을까?
20세기 철학자 루트비히 빈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쓸 수 있는 언어의 한계가 곧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 말은 감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그 감정을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니까요.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도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슬픔, 외로움, 설렘 같은 감정들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단어와 이야기, 경험들 속에서
차곡차곡 형성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때는
그 감정을 정확히 가리킬 말이 아직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조금 나아진다
감정을 언어로 꺼내 놓는다는 건, 그저 상황을 설명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건 감정을 ‘정리’하고 ‘조율’하는 일이기도 하죠.
‘나는 지금 불안하다’,
‘이건 분노가 아니라 실망이구나’,
이렇게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복잡한 감정들이 조금은 풀리기도 하니까요.
상담심리에서도 이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자신의 내면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언어는 감정의 안식처일지도 몰라요
감정이란 건 참 묘해서, 그냥 놔두면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일기처럼 적어보거나,
때로는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 말들이 모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씩 이해해 갑니다.
“언어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다.”
빈트겐슈타인이 말하지 않았어도,
우리 마음은 이미 그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마음속에 무언가가 흐릿하게 맴돌고 있다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줘 보세요.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좀… 힘들다’ 정도로도 충분하니까요.
그 말 한마디가,
당신의 마음이 어디쯤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일 수 있어요.
말을 꺼내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막막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는 형태가 되고, 다룰 수 있는 무엇이 되죠.
지금 당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는,
그에 어울리는 언어가 있을 거예요.
조금 천천히, 당신의 속도대로
그 말을 찾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입니다.